목공책 하나 들이셔요~

2013년 8월 7일 수요일

왕실묘역길과 방학동 은행나무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나이가 먹으면 늙고 병들어 죽는게 이치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큰키나무들은 몇백년 이상의 수명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짧은 사람의 수명에 비해 긴 세월 세상을 굽어 지켜본 나무들을 신성시해 온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실제로 나무들도 백년 정도를 넘어서면 전성기를 지나 점점 늙어가기 시작합니다. 곧게 쭉쭉 뻗던 줄기는 옆으로 구부러지며 속살은 곤충이 파놓은 구멍과 자연스러운 부패현상으로 주름살이 집니다. 이런 노인의 형상을 가진 나이많은 나무들을 보면 참 애잔한 마음도 들고 경이로운 느낌도 듭니다.

이글은 2012년 11월 북한산 둘레길 중에서 왕실묘역길을 아들내미와 조카를 데리고 걸었던 기록입니다. 왕실묘역길은 북한산 둘레길 코스 중에서 가장 짧고 쉬운 코스 중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코스를 가벼이 볼 수 없는 것은 코스의 끝무렵에 있는 방학동 은행나무 때문입니다. 왕실묘역길을 처음부터 차례로 코스를 사진과 함께 되짚어 보겠습니다.

왕실묘역길은 우이령길 입구에서 시작해서 정의공주묘에 이르는 1.6km의 평지코스입니다. 어린아이들도 40분 정도면 완주할 수 있지만 쉬엄쉬엄 나무도 보고 꽃도 보면서 걷는 것이 아이가 걷기에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방법입니다.


우이령길은 북한산을 관통하여 송추로 넘어가는 옛고갯길입니다. 이 우이령길은 저도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예약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군요. 왕실묘역길은 바로 이 우이령길의 입구에서 시작합니다. 짧은 여정은 서울시내에서 보기 드문 아주 맑은 우이천을 끼고 인도를 걷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옆에 차도가 있어 산만하기는 합니다만 한적한 도로라 나름 운치가 있습니다.


약 수백미터의 인도를 지나면 조그만 숲의 입구에 도달하는데 이 곳에 왕실묘역길 입구표시가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증명사진을 꼭 찍어놔야 하죠.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조카가 아들내미를 잘 보살피고 있네요.


당시는 늦가을이라 앙상한 숲이었습니다만 봄/여름에는 제법 나무 그늘이 있을 정도로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야산입니다. 그런데 이 숲도 아주 짧습니다.


이내 마을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 마을에는 이렇게 담장에 예쁜 그림을 그려놓은 집들이 있네요. 너무 소란스럽게 굴면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므로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간단하게 사진에 담습니다.


마을을 지나면 척봐도 범상치 않은 나무가 보입니다. 바로 방학동 은행나무입니다. 이 은행나무의 나이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800년에서 천년 정도의 나이라고 하여 서울에서 가장 나이많은 나무라고 하기도 하지만 최근에 연구기관에서 조사한 결과 1500년도 경에 심어진 나무라 하니... 대략 500년 정도의 나이인 셈입니다.

이때는 11월이라 앙상한 가지만 있었지만 아직도 이 은행나무는 봄에 초록 잎을 무성하게 낸다고 합니다.


오래된 나무들이 그렇듯 몸통에 큰 구멍이 생겨서 메꾸어 놓았고 옆으로 길게 뻗은 가지는 부러질 위험이 있어 노인이 지팡이를 짚은 듯 받쳐 놓았습니다. 사진으로는 그 크기가 실감나지 않습니다만 실제로 보면 그 크기에 압도될 정도입니다. 용문산에 있는 은행나무에 비해서는 키가 작지만 서울 시내에 이런 나무가 있다는게 참으로 고마울 따름입니다.

은행나무 주변에는 담장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빙 둘러서 나무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은행나무에게도 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산업화로 인해 이 일대가 개발되면서 은행나무 주변에 빌라와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이 과정에서 뿌리가 다치게 되고 공기가 통하지 않아 점점 시들어 갔다고 합니다. 그러던 와중 2007년 경부터 도봉구에서 은행나무 인근의 오래된 빌라를 매입하여 철거하고 옆 아파트의 담장을 허물어 나무의 숨통을 트여줬다고 합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돌본 결과 다행히 현재는 나무의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이 은행나무 바로 옆에는 연산군의 묘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패륜 임금이지만 묘소는 서울 시내에 있네요. 다른 왕릉처럼 화려하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이 연산군 묘로 올라서면 은행나무를 위에서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므로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원당샘이라는 우물과 작은 호수 그리고 정자가 있어 쉬어갈 수 있습니다. 원당샘은 이곳 마을 사람들의 식수로 오랫동안 이용되었는데 최근에 다시 복원을 해서 물맛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파평윤씨의 집성촌이었다고 합니다. 파평윤씨는 조선시대 4명의 왕후를 배출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분은 문정왕후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이 연산군묘에서 좀처럼 보기힘든 나무를 발견 했습니다. 바로 흰좀작살나무입니다. 좀작살나무는 키작은 나무로서 그 열매가 아름다워 조경수로 많이 심기도 하고 실제로 야산에 많이 자생하기도 합니다. 좀작살나무의 열매는 보라색의 알갱이가 포도송이처럼 달려 있어 매우 아름답습니다. 제 블로그의 메인 이미지가 바로 좀작살나무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이 열매가 흰색인 것이 흰좀작살나무입니다. 사진으로만 보았지 실제로 본 것은 여기가 처음입니다. 보라색 열매 못지않게 예쁩니다.


방학동 은행나무를 지나 큰 길을 건너면 정희공주묘가 있고 거기서 왕실묘역길은 끝이 납니다. 이 코스는 매우 짧고 쉬워서 어린 아이와 함께 북한산 둘레길 처음 코스로 택할만 합니다. 주변에 볼 것도 많고 쉴곳도 많아서 아이가 재미있어 합니다.

이제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한풀 꺾이면 아들내미와 함께 그동안 못했던 걷기 여행을 또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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