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책 하나 들이셔요~

2013년 3월 9일 토요일

SPF 구조목으로 책장 만들기

사실 마눌님이 가장 먼저 만들라고 주문한 가구는 책장이었습니다. 기존에는 일룸에서 나온 MDF로 만들어진 키 큰 책장을 쓰고 있었는데, 너무 키가 커 답답하기도 하고 색깔도 별로 마음에 안들고 하니 원목으로 산뜻하게 책장을 만들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책장은 의외로 나무가 많이 쓰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예산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마눌님이 저에게 할당한 예산은 책장 두개를 만들되 하나당 십만원을 넘지 마라는 오더였습니다. ㅡ,,ㅡ 키는 1,500mm 정도로 하고 4단 책장으로 만들랍니다. 예산을 맞추려다 보니 집성판재를 잘라 만드는 일반적인 책장은 어렵고 최대한 저렴하게 나무를 적게 쓰는 방법으로 만들어야 하는 미션입니다.

이리저리 제가 구할 수 있는 목재를 조사해보니 딱 눈에 들어온게 있는데 그건 SPF 구조목입니다. SPF 구조목은 Spruce, Pine, Fir (스프러스, 소나무, 전나무)를 수종 구분하지 않고 벌목하여 고온의 스팀 가마에서 건조(Kiln Dry)한 안정적인 원목 각재와 판재들입니다. 그리고 두께, 폭, 크기 등을 규격화된 크기로 가공합니다. 흔히 투바이포(2x4) 가꾸목이라고 불리는 38mm x 89mm 구조목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SPF 구조목은 마감이 잘 되어 있는 편이고 원목이라 강도도 좋은 편인데다 가격까지 저렴해서 목조주택이나 인테리어 공사의 골조로 많이 사용됩니다.

이 구조목을 이용하여 책장을 만들면 저렴한 가격, 튼튼함과 깨끗한 마감까지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기에 구조목의 규격을 조사하여 어떤 식으로 책장을 만들건지를 고민해서 설계했습니다. 그 결과가 아래 도면입니다.


대략 설명 드리면 기둥은 2x4 (38mm x 89mm) 각재(검은색)를 1500mm 길이로 절단하여 6개의 기둥으로 사용하고, 선반(노란색)은 19mm x 286mm 판재를 500mm로 잘라서 사용하고, 선반 뒤의 지지대는 19mm x 38mm 각재를 500mm로 잘라서 사용하는 간단한 구조입니다. 최소한의 나무를 사용해 개방감이 좋은 책장을 만드는게 저의 의도였습니다. 사실 예전부터 옆면과 뒷면을 꽉 막은 책장은 답답해서 별로였거든요.

기둥과 선반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는데, 사전조사한 미니픽스와 라픽스로 연결하기로 생가하고 헤펠레샵에서 미니픽스와 라픽스를 잔뜩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베란다에 설계한 대로 SPF 구조목을 주문했습니다. 3~4일 후 두둥~하고 주문한 나무가 배송되어 왔습니다. 직장에서 계속 늦다보니 베란다에 나무만 쌓아놓고, 작업을 시작할 엄두를 못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마눌님께 한소리 듣고... ㅡ,,ㅡ 하루 휴가를 내어 책장 만들기에 본격 돌입했습니다.


구조목은 전반적으로 말끔하게 대패질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간중간 뜯어져 나간 부분이 제법 있습니다. 전에 만든 핸드사포대를 이용하여 열심히 사포질을 해봅니다. 그런데 뜯어져 나가고 옹이가 패인 부분이 꽤나 많은 데다가 사포질하다가 시간이 다 갈것 같아 그냥 사포질은 포기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기둥과 선반을 미니픽스와 라픽스로 연결할 것이기 때문에 기둥에 미니픽스/라픽스 볼트를 박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수직으로 타공을 할 수 있는 드릴스탠드를 이용합니다. Wolfcraft사의 테크모빌이라는 제품입니다. 수직 타공을 할 수 있긴 합니다만 충전드릴을 쓰지 못하고 전기드릴만 써야해서 좀 불편하고 거추장스럽습니다. 게다가 전기드릴은 소리도 커서 쓰기가 좀 그렇습니다.

미니픽스를 쓸려면 마구리에 40mm 깊이 정도의 8mm 구멍을 타공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지고 있던 8mm 비트에 문제가 있는지 구멍이 전혀 뚫리질 않습니다. ㅡ,,ㅡ


마눌님은 베란다에서 낑낑대는 저를 보며 "니가 하는게 그렇지 머~"하는 야유의 눈빛을 보내고 있고, 아이는 베란다에 나와서 천방지축 뛰어다니고... 식은땀이 줄줄 났습니다. 그래서~ 그냥 쉽게 가자... 욕심을 비웠습니다. 애초에 피스가 노출되는게 싫었고 이왕 만드는 거 조립/분해가 용이하게 만들려고 어려운 길을 갔는데... 시간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그냥 쉽게 가기로 합니다.

흔히 하는대로 이중기리와 목공본드 그리고 피스로 결합하기로 합니다. 이렇게 결정하고서 밤늦게 겨우 만들어진게 아래 사진처럼 책장 하나의 반쪽도 안됩니다. 하루종일 작업한 게 저렇습니다. ㅡ,,ㅡ 머 누구나 초보 시절은 있으니까... 하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괜히 이걸 시작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밀려왔습니다.


또 바쁜 회사일을 이틀 정도 하고 토요일을 맞아 다시 작업을 진행합니다. 며칠 쉬니까 좀 기분도 나아지고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더군요. 한쪽의 선반을 다 연결하고 다른쪽의 선반을 연결해야 하는데 ㄱ자 철물을 쓸 수밖에 없더군요. 그런데 이 ㄱ자 철물을 다는 짧은 피스들이 헛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충전드릴의 토크를 낮게 하던가 이런 경우 그냥 손으로 피스를 조이는게 더 낫습니다.


그 위에다가 다시 아래/위/가운데 선반을 직각으로 피스체결합니다. 코너클램프를 쓰면 좋겠지만 나무들이 너무 두꺼워 가지고 있던 코너클램프는 사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핸드사포대 등 직각이 있는 물건들을 가져다가 클램핑하여 선반을 세워놓고 피스작업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겨우 하나의 책장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조립하면서 보니 이 SPF 구조목이 원목이다 보니까 각재와 판재 모두 휘어있거나 뒤틀어져 있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래서 디테일을 보면 약간씩 아구가 맞지 않습니다. 휜것을 펴지 않고 휘어진 채로 조립했기 때문이죠.


나머지 책장은 다음날 만들기로 하고 조립된 선반을 쌓아 놓은 곳을 보니... 맙소사 엄청 많이 휘어있네요. 구조목이 통원목이라 이렇습니다. 집성판재이면 이렇게까지 휘지는 않는데, 통원목이 튼튼하기는 하지만 이런 문제가 있네요. 그래도 어차피 책이 올라갈 선반이라 가려질 거기 때문에 균형만 잘 맞추자고 쿨하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저렇게 많이 휜 것은 조립하면서 피스로 강하게 결합하면서 펴주던가, 아니면 미리 펴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휘어있는 판재에 물을 좀 뿌린 뒤에 평평하게 클램핑하여 하루 정도 두면 어느 정도 펴지더군요. (인터넷에서 찾은 방법입니다) 이때만 해도 클램프가 하나밖에 없을 때라... 클램프가 여러개 있었으면 동시에 여러개의 판재를 바로 잡았을텐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이렇게 억지로 편 판재는 클램핑을 풀면 다시 휘어진 모양으로 돌아갈 확률이 많습니다. 그러기 전에 빨리 조립하는게 좋습니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나머지 책장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기 시작합니다. 쉽게 가자고 마음 먹은데다가 이미 하나를 만들어봐서 그런지 속전속결로 일이 진행됩니다. 오후 3시쯤 되니 거의 완성이 되어 갑니다. 그런데 아래 사진 처럼 ㄱ자 철물 8개가 부족해서 더 이상 진행을 못합니다. 일요일이라 참 난갑합니다.


동네철물점 두군데 중 한군데는 문을 안 열었고, 한군데는 작은 철물밖에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고 이마트를 가봤는데 없습니다. 철물 8개를 인터넷으로 또 주문해야 하나... 하고 짜증이 날려는데 조금 더 떨어진 곳에 홈플러스가 있는게 생각났습니다. 홈플러스에 가니 오옷~ 여기는 DIYer들의 안식처더군요. 긴급히 필요할 수 있는 나사못, 드릴비트, ㄱ자 철물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더군요. 땡큐~ 홈플러스~

그렇게 해서 완성된 두개의 책장이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책들을 옮겨 꽂느라 무지 힘들긴 했지만 가지런히 꽂힌 책들과 스프러스의 밝은 무늬결이 잘 어울리네요. 마눌님도 처음에는 예쁜데~하고 좋아하다가 휘어진 판재때문에 아구가 안맞는 부분을 찾아내고는 야유를 보냅니다. ㅡ,,ㅡ 별도의 마감은 하지 않고 내츄럴 오일 폴리쉬만 발라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책장을 만들면서 느낀 가장 큰 교훈은 SPF 구조목은 90% 이상이 휘어져 있으니, 이걸 고려하고 구조적으로 펴지게 설계를 해야 된다는 점입니다. 위와 같이 기둥에 얇은 판재가 직각으로 붙는 형태는 휘어진 판재를 바로 잡지 못합니다. 게다가 역학적으로도 좀 약한 면이 있어 실제로 책장을 잡고 흔들면 삐걱삐걱하고 움직이기도 합니다. 두번째 느낀 교훈은 미니픽스, 라픽스와 같은 철물은 정재단된 목재와 드릴프레스가 있어야 가능한 거다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스케치업을 열어 도면을 아래와 같이 수정했습니다. 다음에 또 책장을 만들 일이 있으면 이렇게 만들면 더 편하게 조립이 되고 튼튼하게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핵심은 보강목을 더 대어서 기둥과 판재가 강하게 결합되도록 하자는 겁니다. 도면의 빨간색 각재가 추가되는 보강목입니다. 조립의 순서는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 좌측 기둥 두개와 빨간색 보강목 세개를 아래, 중간, 위에 피스/본드로 고정합니다.
  • 가운데 기둥 두개와 빨간색 보강목 여섯개를 아래, 중간, 위에 좌우로 피스/본드로 고정합니다.
  • 우측 기둥 두개와 빨간색 보강목 세개를 아래, 중간, 위에 피스/본드로 고정합니다.
  • 그리고 좌측 기등과 중앙 기둥을 놓고 선반을 보강목 위에 올려 위에서 보강목 쪽으로 피스/본드 체결합니다. 그러면 휘어진 판재가 펴질 겁니다. 그리고 기둥쪽에서 선반쪽으로 횡으로 피스체결도 합니다.
  • 중앙기둥과 우측 기둥도 4와 동일하게 합니다.
  • 달지 않은 선반들을 ㄱ자 철물이나 다보로 연결합니다.
많은 분들이 구조목이 휘어있는 경우가 많아 사용하기를 꺼려하시는 것 같던데... 용도에 맞게 구조적으로 잘 만들면 SPF 구조목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튼튼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또 책장을 만들라고 해도 SPF 구조목을 사다가 변경된 설계로 만들겁니다.

부디 그럴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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